2013년 8월 30일 금요일

만주농사 이야기




       만주에서 시작된 벼농사의 아픈 역사 
 


오늘 날의 만주 대륙은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논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농지들이 일제의 수탈을 피해 만주로 넘어 온 우리 조상들의 땀과 눈물로 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구한말 일제에게 토지를 수탈당하고 소작할 만한 땅마저 빼앗긴 많은 조선인들은 만주로 이주했습니다. 국경을 넘어온  조선인들은 생계를 위해 값싼 황무지를 중국인들에게 빌려 화전농사를 지었으나 가난을 면치못했습니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석주 이상룡(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선생은 삼원포 일대의 넓고 기름진 땅을 빌려 억새풀을 베어내고 벼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만주의 벼농사는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벼농사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벼농사 성공이후 곳곳마다 논이 만들어지고 조선인은 만주땅을 개발하기 위해 더욱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더 이상 벼농사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 중국인 지주들은 더 이상 조선인을 소작인으로 쓰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조선인들은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지주들의 모습에 분개해 벼를 심어놓은 논에 몰래 잡초씨(벼농사의 대표적인 잡초는 피. 속칭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조선인이 뿌린 잡초로 한해농사를 망치게 된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농사기술을 부족하게 여기고 벼농사를 다시 조선인에게 맡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의 땅을 빌어 삶을 이어가야 했던 조상들의 고단한 역사가,  푸르름을 벗고 황금빛을 머금어 가는 늦여름 들녘을 바라보면서, 가슴 저리게 눈 앞에 다가오네요



2013년 8월 27일 화요일

선풍기로 이름을 날려 승진시키는 재밌는 회사... 그 곳에 가고 싶다 ^^

      일본 미라이 공업의 신선한 경영, 신나는 직장 


해고는 일절 없고, 정년 70세에 1년에 140일 휴가, 5년 마다 전직원들에게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회사..
동종업계 보다 10%나 더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퇴근시간은 오후 4시 45분, 회사에 남아 일을 더 할 수 없도록 문을 닫고 직원들을 쫒아내고(?) 육아휴직은 3년이나 보장 받을 수 있는 근로자 중심의 회사는 어디일까요?

바로 미라이 공업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런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면 금방 문을 닫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창립 45주년을 맞는 이 회사가 매년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남부 기후현에 위치한 전기설비 제조업체인 미라이 공업은 2011년 현재, 1년 매출 2500억원에 연 평균 경상이익률이 15%에 달하고 일본내에서도 1위 상품이 10여 개에 이를 정도록 탄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언론들도 미라이 공업의 경영을 '유토피아 경영'이라고 칭찬하고 있답니다.

'인간중심'의 회사를 만들어 보자는 야마다 회장의 경영신념을 기초로 세워진 미라이 공업은 성별과 성적과 학벌의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미라이 공업의 독특한 인사 시스템(?)인데 이는 언론을 통해서도 소개된바 있죠..
연공서열을 중시하면서도 각 직원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선풍기 앞에서 날린 뒤, 가장 멀리 날아간 종이부터 좋은 직급을 주고, 공장장을 정할 때는 특별히 연필에 이름을 적어 눈을 감고 뽑은 뒤 선택된 사람을 공장장에 임명한다고 하네요^^ . 그런데도 그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고 즐겁게 일한답니다.
운이 좋으면 다음엔 멀리 이름이 날아가 승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야마다 회장의 이런 신선하고 독특한 경영은 연극이 너무 좋아 회사 일을 등한시한 죄로 아버지 회사에서 해고 당한 뒤에 갖게 됐다고 합니다. '사람답게 직장 생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자신의 경험과 좌절을 바탕으로 시작되었기에 그는 철저히 근로자 중심의 회사를 만들어 갈 수 있었고, 자발적근무와 절약정신을 강조하며 생각하는 일터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직원들에게 무한한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이 회사 생산품의 98%가 특허상품이랍니다.

야마다 아키오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다. 회사가 사람을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회사를 만들어낸다. 사람에게 당근과 채찍은 필요없다. 당근만 주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부려서 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꿈과 이상을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만 할 뿐 실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마다 아키오 회장은 누구나 한 번쯤 장난삼아 생각할 수 있는 것을 행동과 현실로 실천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이 더 많이 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직장이 더 많아지면  좋겠죠.. 그러면 세상엔 찌푸릴 일보다는 웃을 일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기사인용 - 이투뉴스
http://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7796
 




2013년 8월 22일 목요일

세상에서 미소(美笑)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세상을 행복하게 바꾸는 아름다운 미소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장길자 회장님)





                 미소(美笑)  
                                                     
미소는 입모양을 구불이는데 불과하지만 수많은것을 바로펴주는 힘이 있습니다

1.미소는 마음에서 우려나오고 따뜻한 미소여야 합니다.
 
2.미소는 화날때 억지로라도 웃으면 행복감으로 전유됩니다.
 
3.미소는 안면과 두뇌에 혈액공급을 원활하게 합니다.
 
4.미소는 상대방에게 옮겨 기분이 전환 됩니다.
 
5.미소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6.미소는 사회를 따뜻한게 합니다.
 
내가 미소 지으면 세상도 함께 미소를 짓습니다.


그럼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언제 나오게 될까요?

어렵고 힘든 이웃을 위해 손밀고 그 분들과 함게 울고 웃으며 땀흘릴 때 나오는 미소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미소가 아닐까요^^

국제위러브유윤동본부는 그런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행복을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도록 국내뿐 아니라 해외 지부 회원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아름다운 미소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렵지 않죠?
이젠 그 미소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용기와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됩니다.
            RIGHT NOW! RIGHT  HERE!

   바로 지금! 바로 내 주위로 부터 행복한 웃음을 시작해보세요.

                                                청소년 인성 교육
                                            어머니 사랑의 김장 나누기
                                     페루 지부 - 지진 피해 임시교사 건축
                                              전 세계 헌혈하나둘 운동
                                     새생명 사랑 가족걷기대회



우리 마음의 낮과 밤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사랑의 빛으로 세상을 행복으로 밝히는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장길자회장님)


밤과 낮의 구분

스승이 제자들에게 밤과 낮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물었습니다.
한 제자가 대답했다.
 
"멀리서 동물을 보았을 때, 그것이 말인지 소인지 분간할 수 있으면 낮이고, 분간할 수 없으면 밤입니다."
 
"아니, 틀렸네."
 
그러자 다른 제자가 나섰습니다.
 
"멀리서 나무를 보았을 때, 그 나무가 무화과나무인지 복숭아나무인지 분간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밤낮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역시 틀렸네."
 
"그럼 대체 어떻게 구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자들이 입을 모아 물었습니다.
 
"이웃과 가족을 분간할 수 있으면 낮이고, 분간할 수 없으면 밤이네
이웃과 가족을 눈 앞에 두고도,적인지 아닌지 분간하지 못하고, 이웃을, 그리고 가족을 원수대하듯 한다면 아무리 해가 떠 있다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은 어두운 밤인 것이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속해 계신가요?

우리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그저 지나가고 스쳐가는 사람들로 외면하지 않고 그 가운데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전하고 힘을 보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우리 마음은 항상 밝은 햇살 아래 머물게 되겠죠^^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는 그래서 항상 마음의 빛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모여 어두워져 가는 세상을 사랑의 빛으로 밝혀 나가고 있습니다.

긴급구호활동을 통해 재난과 재해의 고통 속에서 지쳐있는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가 항상 그분들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땀흘리며 절망 속에서 희망의 끈을 이어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마음 속에 밝은 햇살이 떠올라 내일이 희망과 행복을 만들어 가는 세상.... 이것이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의 꿈입니다.

이 행복한 꿈을 같이 만들어 가시면 어떨까요?




2013년 8월 20일 화요일

우리도 유죄가 될 수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오늘의 실천
             클린월드운동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장길자 회장님)


이탈리아 라퀼라  지진에 대한 잘못된 예측으로 실형선고 받은 과학자와 공무원

2012년 10월 23일(현지시간)... 4년 전인 2009년 4월 이탈리아 중부에서 발생한 L’Aquila 지진 당시 경보를 담당한 방재국 간부 및 과학자 7명에 대해 징역형 4년이 선고되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중부 일대에는 소규모 지진이 빈발하게 일어나 시민들이 방재당국의 공식 분석을 요청했지만, 이탈리아 국립 지구물리학 연구소의 엔조 보스키 소장 등은 대형 지진이 발생하기 6일 전 회의에서 별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시민들에게 "큰 지진은 없을 것" 이라며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 결과 인구밀집지대에서 정상적인 대피활동이 이뤄지지 않았고 309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막대한 규모의 인적,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이탈리아 검찰당국은 잘못된 분석과 선언이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기소했고, 방재국과 과학자측은 오늘 날의 과학기술로는 정확한 피해 일시와 규모를 산정하기 어렵고, 확실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인력을 대피시킨다는것 자체가 무리였다며 이런  강진이 닥친 것 자체가 이례적 사례라고 반박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법원이 최종 판결에서 공무원과 과학자들이 예측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미 유럽권에선 기상이나 기후, 자연재앙에 대한 예보와 관련된 전문가와 학자들의 법적 책임과 한계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인용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5892672

이 기사를 접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과 4년 전의 일임에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공무원과 전문가에 대해 법적인 책임과 심판을 요구하고 있는데 지금 날로 심각해져가는 환경파괴와 기후재앙의 고통을 외면하고 현실의 편안함 속에 안주하게 된다면 우리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미래세대 앞에서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것처럼 우리 모두가 법의 심판대에서 실형을 선고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클린월드운동을 통해 미래세대에게 평안하고 아름다운 환경과 자연을 물려주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환경정화활동과 의식 전환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비록 오늘의 작은 실천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노력이 두 사람이 되고, 사회전체가 함께 움직이게 된다면 예고된 환경재앙의 고통 속에서 우리와 후손들을 건져낼 수 있는 끈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국제위러브유운동와 함께 미래를 위한 손을 함께 내밀어 보시기 바랍니다.

   RIGHT NOW!   RIGHT  HERE!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2013년 8월 14일 수요일

메어리의 자랑

사랑을 깨닫기까지...


미국의 텍사스주의 한 가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그 가정은 메어리라는 어여쁜 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얼굴에 화상을 입어 아주 보기에도 흉측한 얼굴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절름발이에다가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내는 집안이었습니다.

어느 날 메어리의 담임선생님이 메어리에게 학부모 상담을 위해 부모님을 학교로 오시도록 전달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메어리는 남들에게 자기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나타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불구자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흉측한 얼굴을 보면 분명히 자신을 놀려댈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이라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게 선생님의 당부를 전해 주었습니다. 내심 어머니가 바쁘다는 핑계로 학교에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그 후로 며칠 뒤, 학교에서 어머니가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멀리서 친구들과 함께 재잘거리면서 즐겁게 오는 메어리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는 매우 반가워하면서 달려가 메어리를 불렀습니다.
순간 메어리는 당황 하면서 친구들과 어깨동무하고 다른 길로 돌아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물었답니다.

"메어리 저 얼굴이 흉측한 아주머니는 누구니?" 메어리가 대답했습니다.
"응. 우리 집에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식모야 !"
순간... 메어리의 어머니는 그 곳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한 채 멀어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딸의 말이 끊임없이 귓가에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메어리와 어머니의 사이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며칠 동안을 거의 모르는체하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얼마 후 메어리의 어머니가 먼저 메어리에게 말을 건네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에는 사진이 한 장 들려져 있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단란하고 매우 아름다운 한 가정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를 보담은 여인은 세상에서 손꼽으라면 꼽을 정도의 미모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옆에 앉아 있는 남자는 참으로 멋진 신사였습니다.
메어리는 왜 엄마가 이 사진을 보여 주시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말이 들려왔습니다.
"사진속의 그 어린아이는 바로 메어리가 백일 때 찍은 사진이란다.
그리고 그 사진 속의 남자와 여자는 바로 네 아빠와 네 엄마란다.
네가 갓 백일을 지날 즈음에 너의 방 2층에서 불이 일어났었지...
그때 너의 엄마는 바깥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고, 너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퇴근하고 돌아올 때쯤이었어...
너의 방 2층에서 불이 난 것을 본 네 엄마는 너를 구하겠다고, 화염이 내뿜는 2층으로 달려갔단다.
동네 사람들이 말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단다.
네 엄마는 이미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네 엄마는 너를 구하기 위해서 2층으로 몸을 날렸고, 이를 퇴근하다가 보게 된 너의 아버지는 너와 네 어머니를 구하려고 2층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모녀를 가슴에 안고 가까스로 2층에서 뛰어 내리셨단다.
네 아버지 품안에는 너를 꼭 껴안은 너의 어머니가 안겨 있었고, 죽을힘을 다해서 뛰어내린 너의 아버지는 실신을 하고 말았단다...
왜냐하면 땅에 떨어지는 충격으로 너의 아버지의 한쪽 다리가 골절되었기 때문이란다. 그 고통으로 너의 아버지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말았지...
그보다도 더한 것은 너의 어머니였단다.
이미 너를 품에 안은 너의 어머니의 얼굴은 화상으로 인해 쭈그러들었고,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었단다.
머리카락은 불에 그을려서 거의 산발이 되고 머리의 대부분이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너를 살렸다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단다. 너무나도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단다.

그 후로 너의 아버지는 다리가 꺽여 절름발이가 되었고, 그 고통과 후유증으로 직장과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했어... 그 충격으로 인해 폐인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그일 후로 다리의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날마다 술로 나날을 보낸 너의 아버지는 그때의 아픔으로 지금도 알콜 중독자가 되어있단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메어리의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 묻어 있었습니다.
자기의 생명을 구해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던지셔야만 했던 어머니....
남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멸시당하시고 아픔을 당하셨으면서도 꿋꿋하게 자녀를 양육해 오신 그 어머니....
바로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눈물을 흘리시고 계신 그 어머니셨습니다.
메어리는 이제야 자신의 생명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어머니의 흉측한 얼굴까지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남들에게도 지금까지는 어머니라고 알려지길 무서워했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자신의 자랑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메어리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남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의 자랑스러운 어머니라고...
나의 생명을 낳아주시고, 또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려주신 나의 어머니시고 아버지시라고 그렇게 말입니다....





2013년 8월 7일 수요일

사막을 옥토로 일구어낸 네게브의 기적

  '벤 구리온'과 네게브의 황금 밀밭



이스라엘의 곡창지대인 네게브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두 개의 무덤에는 이스라엘의 총리였던 벤구리온과 그의 아내가 잠들어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황금 밀밭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서 그들은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
                                 .
이스라엘 땅의 대부분은 아직도 황무지인 곳이 많습니다.
특히 네게브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매우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1948년 독립한 이스라엘의   초대총리에 오른 벤 구리온은 바로
이 네게브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네게브 황무지가 필요한 것은 물과 사람의 땀이라고 외치며 개간사업을 주도해 나갔습니다.

그는 13년간 총리직에 있으면서 황무지 개간에 온갖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송수관을 만들어 갈릴리 호수에서 물을 끌어왔고, 지하수를 개발하였으며 바닷물을 담수화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씨를 뿌려 첫수확을 거둬들였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적이라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 뒤, 그는 명예롭게 총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총리공관에서 나온 그는 운전사에게 네게브로 갈 것을 부탁했습니다.
네게브에서는 많은 농부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농부들 앞에서 벤 구리온은 평소 밝혀온 소신대로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을 돕고 싶으니 그들의 공동생활형태인 키부츠의 일원으로 받아달라고 정중히 부탁했습니.
따뜻한 박수 속에서 주민들은 그와 그의 아내를 받아주었고,벤은 총리공관의 넓고 화려한 집무실이 아닌 작고 비좁은 키부츠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 이미 77세였습니다.

다음날부터 벤은 다른 농부들과 똑같이 손에 흙을 묻히며 일을 했습니다. 때때로 너른 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며 일꾼들과 농담을 주고 받는 벤의 모습은 영락없는 농부 그자체였습니다.
벤이 그곳에서 총리로서 받은 특혜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벤 자신도 그런 특혜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벤을 찾아오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너무 많아 그들이 쉬어가게끔 만든 4평짜리 방이 유일한 특별대우였다고 하네요.
1973년 벤은 87세의 나이로 10년간의 농부 생활을 마감하고 네게브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한 푼의 동전도, 단 한 개의 저금통장도, 한 평의 땅도 없었습니다.정치인들의 전유물인 자서전도 남기지 않은채 그는 자신의 흔적을 조용히 비우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떠난 그 곳에서, 사람들은 척박한 네게브 땅을 황금밀밭으로 바꿔놓은 그의 정신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00년 동안이나 나라 잃은 슬픔으로 이방 나라에서 온갖 수모와 박해를 겪으며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은 1948년 기적적(?)으로 독립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옛 조상의 땅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펼쳐진 건 황량하게 버려진 대지뿐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오늘 날과 같은 경제적 번영과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건
사막을 오아시스로 바꾸고자 했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바로 '벤 구리온' 초대 수상이 있었습니다.
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네게브의 무덤을 찾아 그의 정신을 기리고 배워가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인용.네이버지식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cid=799&docId=1007575&mobile&categoryId=3270 

                                    
                       
                                                            



                              
                                                     

2013년 8월 5일 월요일

뿌리로 부터 이어진 사랑으로 이뤄가는 홀로서기


다문화가정 및 조손가정돕기를 통해
내일의 희망이 자랄 수 있는 뿌리가 되어주길
소망하는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장길자 회장님)





전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대나무...
다양한 종류와 모습으로 인간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도구의 재료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론 약으로 씌어 병을 치료하는데 활용되었고, 가난한 살림 속에서는 귀한 양식이 되어 오늘 날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나무 숲을 가보면 그 올곧은 모습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가녀린 몸에 마디를 두르고, 하늘을 향해 자라는 대나무는 여타의 나무들처럼 휘거나 늘어지지 않고, 얽히거나 기대지도 않은채 홀로 꼿꼿이 서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라도 심하게 불라치면 금방이라도 뽑힐 듯 좌우로 크게 흔들리지만 바람이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듯 제자리에 오롯이 서 있는 대나무는 과거로 부터 선비의 지조로 추앙될 만큼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대나무의 유연함을 버텨내는 근본은 바로 뿌리에 있습니다.

대나무 숲의 수많은 대나무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서로 다른 대나무와 연결하고 누구의 뿌리인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엉켜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엉킨 뿌리로 땅을 뚫고 들어가 지반을 단단히 잡고 서로서로를 잡아주고 지탱해 주기에 태풍 앞에서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올곧게 자라는 대나무의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되돌아보게 해주는 자연의 교과서입니다.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는 이런 자연의 교훈을 사랑을 통해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는 이런 활동의 일환으로 국내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지만 사회적 약자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문화가정의 자녀들과 부모를 일찍 잃고 조부모 밑에서 힘겨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희망의 홀씨를 마음 속에 심어주고 자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아픔이 닥치더라도 꿋꿋히 다시 일어서고 내일을 향해 다시 나갈 수 있는 대나무와 같은 아이들의 내일을 만들어 주기 위해 항상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는 아이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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