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에서 시작된 벼농사의 아픈 역사
오늘 날의 만주 대륙은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논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농지들이 일제의 수탈을 피해 만주로 넘어 온 우리 조상들의 땀과 눈물로 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구한말 일제에게 토지를 수탈당하고 소작할 만한 땅마저 빼앗긴 많은 조선인들은 만주로 이주했습니다. 국경을 넘어온 조선인들은 생계를 위해 값싼 황무지를 중국인들에게 빌려 화전농사를 지었으나 가난을 면치못했습니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석주 이상룡(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선생은 삼원포 일대의 넓고 기름진 땅을 빌려 억새풀을 베어내고 벼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만주의 벼농사는 이때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벼농사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벼농사 성공이후 곳곳마다 논이 만들어지고 조선인은 만주땅을 개발하기 위해 더욱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더 이상 벼농사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 중국인 지주들은 더 이상 조선인을 소작인으로 쓰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조선인들은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지주들의 모습에 분개해 벼를 심어놓은 논에 몰래 잡초씨(벼농사의 대표적인 잡초는 피. 속칭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조선인이 뿌린 잡초로 한해농사를 망치게 된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농사기술을 부족하게 여기고 벼농사를 다시 조선인에게 맡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의 땅을 빌어 삶을 이어가야 했던 조상들의 고단한 역사가, 푸르름을 벗고 황금빛을 머금어 가는 늦여름 들녘을 바라보면서, 가슴 저리게 눈 앞에 다가오네요
우리 조상들이 나라잃은 고통이 참 많은것 같아요. 마음이 아프네요.
답글삭제벼농사에 있어 이런 아픔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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