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6일 화요일

담쟁이 몽이의 소원2

                  몽이의 소원
                    두번째 이야기



땅에 떨어져 흙 속에 파묻히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지내며 몽이는 지난 가을의 악몽 같은 순간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지만 오직 하나... 엄마의 말만은 희미하게나마 기억해내고 있었습니다.

엄마... 그래 엄마를 만나려면 이 어두운 땅 속에서 나가야만 해.. 그리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야 해...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몽이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차고 아팠지만 조심스레 뿌리를 뻗어 흙 사이로 힘들게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배운 기억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땅 속에 스며있는 물과 양분을 있는 힘껏 빨아드렸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조금씩 요령도 생기도 힘도 생겨 더 넓고 깊게 뿌리를 뻗을 수 있었고 손을 내밀어 온 힘을 다해 흙을 밀어 올렸습니다.

드디어 하늘을 본 순간... 너무나 행복하고 기뻤습니다.
다행히 가까이에 벽돌로 쌓아 높게 둘러친 담이 있어 그 곳을 향해 더 열심히 손을 뻗쳐 나갔습니다.
손이 닿은 날부터는 이젠 오직 엄마를 만날 생각에 하늘만 바라보며 열심히 손을 하늘로 내밀어 갔습니다.

그런데 몽이보다 일주일 늦게 같은 덩굴이 자기 옆에서 같은 벽을 타고 올라오는 게 보였습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몽이는 잠시, 하늘로 뻗던 자신의 손을 그 덩굴 쪽으로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덩굴의 손을 잡아 위로 올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덩굴은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네가 손 잡아주지 않아도 이런 벽쯤 금방 올라왔을 거야... 어쨌든 고맙다. 난 송알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냐?”
송알이라고 그럼 내 쌍둥이 동생이잖아... 몽이는 순간 너무 놀라고 반가워 송알이를 덥썩 안았습니다.
송알아.. 나 몽이야... 이렇게 모습이 바뀌니까 알아보지 못했네.... 정말 반갑다...”

몽이 형? 그래.. 반갑네.. 하지만 앞으로 내 일에 방해 안했으면 좋겠어... 내가 알아서 갈테니까 쓸데없이 내 손 잡지 않아줬으면 해..”

 몽이는 송알이의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송알이는 자기보다 먼저 올라간 몽이를 따라 잡으려는 욕심에 부지런히 손을 뻗고 양분을 빨아드렸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몽이는 송알이도 엄마를 만나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가보다 싶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송알이의 욕심과 몽이의 함께 하려는 기다림이 이어지면서 어느 순간 송알이가 몽이 위로 손을 더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밑에 있는 몽이를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형은 열매 때부터 항상 내 뒤만 쫒아오더니 싹을 틔우고도 똑같네.... 역시 형은 나한테 안돼... 가만 이제 내가 더 크니까 내가 형해도 되겠네... 이제 니가 내 동생이다.. 알았지... 형 소릴 듣고 싶으면 날 앞질러 보던가.. 큭큭큭...”

그러자 몽이가 말했습니다.
송알아! 난 니가 나보다 더 잘자라서 기뻐...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늘로 손을 뻗다보면 언젠가 엄마를 다시 만날거야... 엄마가 열매 때부터 그랬잖아... 헤어지더라도 하늘소망만 가지고 열심히 올라가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엄마.... 글쎄 난 별로 엄마 보고 싶지 않은데... 열매 때도 엄마는 늘 너만 사랑했지... 난 뒷전이었어.... 내가 잠들었을 때마다 너한테만 맛있는 거 준거 다 알아... ..”

아니야, 그건 니 오해야... 엄마는 나도 너도 다 사랑하셨어...”

됐어... 더 듣고 싶지 않아... 지금은 엄마 없이도 나 혼자 잘할 수 있으니까 더 이상 엄마 얘끼 꺼내지마...
그리고 너보다 내가 더 낫다는거 보여줬으니까 난 더 이상 위로 안 올라 갈 거야. 해가 뜨거워지면서 이제 담을 잡고 있는 손도 타들어갈 지경이야... 이젠 저 앞 느티나무가 가려주는 그늘 아래서 편히 쉴 거야..그러니까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몽이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 동안 송알이가 하늘로 손을 뻗은 게 다 자기를 이기려는 욕심 때문이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엄마의 사랑도 잊어버리고, 더 이상 엄마를 찾기 위해 손을 하늘로 뻗지 않겠다는 말을 송알이가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몇 번이나 송알이를 설득해 봤지만 송알이는 대꾸도 없이 잎을 그늘 아래로 내린 채 옆으로만 가지를 벌려나가고 있었습니다.

몽이는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지만 송알이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올라가야 할 시간을 많이 허비했던 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열심히 양분을 뿌리로 빨아들이고 손을 더욱 힘 있게 하늘로 뻗어나갔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달궈진 벽을 움켜잡고 하늘로 향해 올라간다는 건 그 자체가 고통이고 아픔이었지만 그럴수록 송알이는 엄마와 만날 시간을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습니다.

밑에서는 송알이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 왔습니다.
! 그런다고 엄마를 만날 수 있을거 같애. 위에 올라가 봤자 이 밑에랑 다를거 하나도 없어... 엄마가 우릴 만나러 올거면 새들한테 우릴 내주지도 않았겠지... 엄마가 그냥 한 소리를 가지고 뭘 그렇게 힘들게 손을 뻗냐... 정말 어리석긴...”

때론 송알이의 말이 가시처럼 마음을 파고들었지만 몽이는 그런 송알이를 위해 엄마에게 기도했습니다.
엄마, 제 말 듣고 계시죠... 송알이가 엄마의 사랑을 다시 깨닫고 엄마를 찾아 손 내밀 수 있도록 부디 마음을 돌이켜주세요.... ”

몽이는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달빛에 잠을 청할 때마다 ,그 옛날 엄마가 바람을 따라 이야기를 들려주던 즐거웠던 그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설레임 속에서 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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